고려시대의 무용 궁중정재 수연장, 포구락 등에 대하여 고려시대의 문화는 불교가 주도하였다. 불교는 고려의 국교로써 왕실의 지지와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최고로 성행 하였다. 고려 사회와 문화예술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이렇게 불교적인 사상은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도 그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도참사상과의 결합으로 인해 이때 전해진 불교는 본래와 달리 미신적인 요소를 많이 갖게 되었다. 고려는 팔관회와 연등회처럼 신라의 유풍이 남아 있었다. 11월에는 팔관회를 행하였고 연등회는 음력 정월 15일에 불교 행사로 거행되었다. 이때에는 그 당시의 예술과 문화가 집대성되어서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어 거행되었으며 표현되었는데 이것을 ‘가무백희’라고 하였다. 고려 시대의 가무백희는 산대잡극과 구나 등에서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산대잡극은 처용무를 비롯한 가악무와 장대 타기와 같은 곡예적인 요소들은 포함하여 시행되었으며 관객들의 시선을 주목하게 하였다. 구나는 악귀를 쫓는 종교적 행사로 구나부와 재인 등이 등장하여 가무백희를 연희하는 나희부로 구분하여 행하여진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색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산대잡희와 구나의 연희된 내용들은 오늘날의 가무극인 중부 지방의 산대놀이나 해서 지방의 탈춤, 경상도의 오광대놀이, 남사당패의 사발 돌리기, 죽방울 돌리기, 장대 타기, 줄타기, 땅재주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 시대의 궁중무용을 알아보자. 신라로부터 앞서 전해 오던 거국적인 행사였던 연등회와 팔관회는 태조 때부터 계속하여 시행되었는데 연등회는 법회를 뜻하며 4월 초파일인 석가탄신일이라든지 그 밖의 날에 등불을 밝히는 광명한 의식이었다. 2월 보름을 특별히 연등회라고 하였으며 그 달에는 반드시 왕이 봉은사에 가서 도착한 이후에 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군신이 춤추며 노래하고 술 마시면서 함께 즐기는 동시에 불덕을 기리고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불교 행사였다. 자연스럽게 많은 종류의 음악과 춤이 선보이게 되었다, 팔관회는 11월 15일에 행하였으며 이 날에도 왕은 법왕사에 거동하는 것이 상례이었다. 팔관회는 국도였던 개경에서만 열리지 않았으며 서경 평양에서도 열렸다. 서경의 팔관회는 개경보다 한 달 전인 10월에 여는 것이 예로 되어 있었다. 이렇듯 팔관회는 고대 이래 영고, 무천, 동맹 등의 국가의 민속과 화랑들에게서 행해지던 가무 등 신라의 문화예술이 종합된 대제전을 이루었다. 특히 팔관회에서는 사선무와 선유락과 같이 화려한 춤 등이 성대히 추어졌다. 궁중 정재로는 포구락, 구장기별기, 왕모대가무, 수연장, 연화대, 오양선, 헌선도가 추어졌으며 동동, 무고, 무애 등과 같은 춤도 추어졌다. 각종 의식에는 일무가 추어졌는데 이러한 춤들은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그러면 고려 시대에 추었던 춤 들 중 궁중 정재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헌선도’는 정월 15일 원소가희 행사에서 임금을 송축하기 위하여 행하던 춤이다. 이는 전설상의 선인인 왕모가 선계에서 내려와 선도를 드린다는 내용의 춤이다.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 그리고 조선 말기의 각정재 무도 홀기에 표기된 헌선도에 대한 기록 중에서 악학궤범에 나타난 헌선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춤의 구성은 왕모 1인과 협무 2인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의장대가 무대 좌우로 늘어선다. 죽간자 2 사람은 춤을 인도한다. 춤은 죽간자의 구호와 왕모의 치사로 시작되고 춤추다가 창사를 하고 또다시 춤추다가 창사를 한다. 다시 춤추다가 죽간자의 병려체로 된 구호로써 끝이 난다. 사용하는 음악에 대해서는 고려사 악지에 적혀 있으며 순수 당악을 사용한다. 다만 천년만세 인자로 끝내는 점이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에 전해지는 조금 다른 점이다. ‘수연장’은 상원에 임금이 음주할 때 임금에게 술을 올리고 축수하고 춤추는 가무회의 형식이 발전된 것이다.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 각정재 무도 홀기에 나타난 수연장을 비교해 보면 고려사 악지에는 19인으로 구성되는 데 반해 악학궤범에서는 4인씩 4대로 나누며 여기에 의장대는 없다. 죽간자 2인이 춤을 인도하고 죽간자 2인이 칠언으로 된 시 일장을 구호하고 치어한 다음에 춤을 추다가 창사를 부른다. 끝날 때도 칠언 시 일장을 구호 치어 한다. 음악은 연대청인자로 시작하고 중강령, 파자령, 중강령의 순서로 반주하고 다시 중강령의 주악으로 끝을 낸다. 오양선은 일종의 무악으로서 헌선도와 마찬가지로 임금을 송축하는 내용이다. 오양선은 가무희의 형태를 가지며 고려사 악지에 기록된 헌선도, 수연장, 포구락, 연화대, 석노교, 곡파, 만년환만 등과 함께 대곡에 든다. 포구락은 문종 27년 11월에 교방 여제자인 초영이가 구장기별기와 함께 중국에서 들여와 다른 교방 여제자들과 함께 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정재는 문종 27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정재 중의 하나이다. 연화대는 본래 서역의 한 나라인 석국의 석지무에서 나온 춤이다. 악학궤범에는 학무와 연화대가 분리되어있고, ‘학연화대 처용무 합설’에서는 처용무를 추고 난 다음에 학무와 연화대의 순서로 합쳐져 있다. 왕모대가무는 일수 55명의 여기가 현대의 매스게임과 같이 ‘군왕 만세’, ‘천하태평’ 등의 글자 모양을 만들어가면서 추는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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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무용 궁중정재 수연장, 포구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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