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일컬을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가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가무라는 것은 춤과 노래를 함께 일컫는 것이다. 옛날에 말이 발달하지 않고 악기나 도구의 발달이 되지 못했던 고대에는 음악을 연주하기보다는 주로 소리나 노래를 통해서 춤을 추었을 것이었기에 민속춤에 있어서 소리춤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리춤은 그 어떤 문헌에도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나 ‘가무’라는 단어는 <마한 전>에 표현되어 있다. 또한 소리춤 이라는 것이 집단 무용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기록도 몇몇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견된 문헌에서는 여성의 소리춤으로써 강강술래의 원형자료로 보이는 <조선의 향토 오락> 및 <통속 속물 조사보고서> 등도 찾아볼 수 있다.
강강술래는 소리를 통하여 그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유형이기에 소리춤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강술래가 무슨 뜻이며 또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지, 또한 어떠한 사람들에 의해 창작된 것인지, 주로 어디에서 누가 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으나 뚜렷하게 말할 수 있지는 않다. 특히 춤의 기원에 대해서는 놀란의 여지와 이론도 많다. 그럼 소리춤의 대표적인 강강술래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춤은 언제부터 시작했고 누가 창안했으며 왜 하게 된 것일까? 강강술래의 발생 시기에 대해서 임동권 님은 마한 때의 민족 유희에서 찾았다고 주장한다. 마한이 아니라도 백제부터 고려시대에도 이미 전파되었던 놀이인지도 모르겠다고 전제한다. 또한 원시시대의 토속적인 원무가 전승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서 채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정익섭 님과 이병기님는 마한시대의 유희로 보고 있으며 김정업 님은 상고시대의 수렵 무용으로 본다. 송석하님는 고대의 감사제 성격을 띠고 있는 수확에 대한 감사의 형태로의 자취라고 주장한다. 지춘상 님의 주장에 따르면 이 춤은 마한 때의 주술적 행위를 모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장주근 님은 원초적이며 자연발생적인 민중적인 원무로, 최상수님는 임진왜란 때 동원된 해안지대 부녀자들의 가무라는 설을 내세워 주장한다, 정병호 님은 마한 시대의 여성제의 와 관련된 행렬 무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설과 주장이 있다.
이처럼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한 견해는 국한 적인데 정병호님이 주장한 마한 때의 여성제의설에 대한 근거와 강강술래의 원형적 견해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춤들의 기원이 그렇듯이 강강술래도 역시 고대의 제의에서 발생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 근거로 강강술래가 여성들끼리만 하는 춤이라고 볼 때, 이를 옛 제의와 관련시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이면 이미 삼한시대부터 있어 왔던 여성 동제를 상기하고 있다. 예부터 전라도 지방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진도 지방의 도깨비 굿과 임실 지방의 방아제와 같은 여성 제의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삼국지><마한 전>의 군취가무 기록에서 보면, 고대 제의에서는 농경 생산과 풍요의 현실적 생산자로서 여자 사제가 집례를 하였다고 가정하고 있다. 동제가 축제와 굿놀이의 혼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신과 인간, 음과 양, 천신과 지신의 고대 제의를 여사제가 주관하였다는 가설은 큰 무리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해남과 동일 문화지역으로 볼 수 있는 진도 지방의 기우제나 충제, 그리고 씻김굿이라고 하는 도깨비 굿이 끝난 후에 행하는 ‘굿 내다’ 등도 역시 여성만의 제의라고 할 수 있다.
도깨비 굿은 음력 보름날 밤에 각 마을에서 부녀자들이 얼굴에 종이 가면을 쓰고 소리나는 각종의 물건을 들고 치며 돌아다닌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잡귀와 잡신을 몰아낸다고 하며 마을 입구에 가서 제물을 차려서 제사를 지낸 다음에 불을 피워서 그들이 쓰고 있던 종이 가면을 태운다. 그러고 나서 피운 불을 뛰어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 제사라고 한다. 전북 임실 지방에서도 역시나 음력 보름날 밤이면 부녀자들이 어느 집의 방아를 훔쳐서 그것을 앞세우고 노래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부정한 것들을 마을 밖으로 몰아내는 행위를 한다고 한다. 이후 마을 입구에서 거꾸로 방아를 세워 땅에 묻고 거리제를 지내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또한 진도 씻김굿이 끝나면 여인들만 허수아비를 가지고 마을 밖으로 나가 잡귀를 몰아내는 듯한 행렬 놀이를 하는데 이것을 ‘굿 낸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도깨비 굿이나 방아 제는 여성들만 참여한 밀의였다고 한다. 만약에 남성이 이 장면을 보게 되면 신성성이 상실된다고 생각했다. 제의가 끝난 후에는 남성들도 함께 ‘뒤풀이’라고 하여 춤판을 벌였다. 이렇게 볼 때 소리춤 중 대표적인 강강술래의 유래 중 벽사적인 의례 후에 추던 풍속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