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재무 중 춘앵전과 처용무에 대하여

by 소리향 2021. 3. 2.
반응형

  ‘춘앵전’은 조선 순조 시대에 궁중정재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고 효심이 가득하던 효명 세자에 의해 지어진 무용이다. 이는 순종숙황후의 40세 보령을 축하하기 위하여 창작되었다. 이 춤은 화문석 위에서 추어지는 독무이다. 중광지곡을 완전 4도 아래로 이조한 유초신지곡의 첫 번째 곡인 평조회상을 연주하면 화문석 끝에 선무가 두 팔을 여미고 땅에서 들어 올린 발이 보이지 않게 걷는다. 화문석 한가운데에 무원이 위치하면 박을 쳐서 음악을 그치고 춤은 족도를 하면서 좌우 팔을 얼굴 앞으로 들어 창사를 한다. 다음 영산회상의 두 번째 곡인 중령산을 연주하면 두 팔을 일자형으로 벌려서 아래로 반쯤 내렸다가 뒤로 뿌리는 춤을 춘다. 이것을 ‘수수 쌍불’이라고 한다. 이후 차례로 좌우로 각각 몸을 반쯤 돈 다음 한 팔씩 들어 뒤로 뿌리고 다시 한 팔씩 어깨 위에 원형으로 얹는다. 다시 음악이 세령산을 연주하면 오른쪽으로 2 장단을 나갔다가 2 장단 동안 들어오고 왼쪽으로 2 장단을 나갔다가 2 장단 동안 들어온다. 또 양팔을 어깨 높이에 수평으로 벌리고 몸을 한 바퀴 돈 다음 한 팔씩 앞으로 넘긴다. 두 팔을 앞으로 지어 여미고 족도 한다. 다음에는 한 발씩 장단에 맞추어 앞으로 내민 다음 한 팔을 어깨에 얹는다. 또 한 팔을 들고 드는 팔 쪽을 돌아본다. 두 팔을 세 번에 걸쳐서 드는데 첫 번째는 허리 좌우로 약간 뜨게 들고, 두 번째는 발을 들고, 세 번째는 일자형을 짓는다. 그다음에는 앞으로 세 걸음을 나간다. 세 번째 걸음을 나선 다음에는 두 팔을 세게 뒤로 뿌린 후 한 팔을 앞으로 밀면서 이수고저 한다. 볶는 염불로 빠른 음악을 연주하면 웃으며 뒤로 두 팔을 여미고 한 발을 들며 솟아 뛰는 동작을 하는 데 이를 ‘화전태’라고 한다. 그 후에 뒤로 물러나 화문석 끝에 선다. 다시 음악이 타령으로 바뀌면 두 팔을 벌리고 드나든다. 걸음을 따라 좌우수에 고저가 생긴다. 좌우로 한 번씩 뿌리고 돈 다음, 한 팔은 앞으로 얹고 드나든다. 화문석 한가운데에서 두 팔을 뒤로 뿌린 다음 두 팔을 여미고 수수무를 한다. 뒷짐을 진 채로 뒤로 3 장단을 나갔다가 앞으로 3 장단을 들어왔다 하며 드나든다. 한 팔을 어깨에 매였다가 두 팔을 벌리고 좌우로 한 번씩 돈 다음 좌로 3번을 돌고 두 팔을 앞으로 여민다. 다시 두 팔을 벌리고 뒷걸음질을 쳐서 화문석 끝에 이르면 절을 하고 춤이 끝난다. 춘앵전은 1인이 추는 춤으로 무동이 추기도 하나, 대개 여자 기녀가 추었으며 춘의 의상은 화관을 머리에 쓰고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의 앵삼을 입고 화려한 화문석 위에서 추는 우아한 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앞서 말한 ‘화전태’라고 하는 부분은 하얀 이를 보여주며 곱게 웃으며 춤을 추는 한 부분으로 이 춤에 있어서 백미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꽃 앞에 선 교태가 바로 이 부분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춤의 반주 음악은 평조회상 전곡을 사용한다는 점도 이 춤의 특징이라 하겠다.

  ‘처용무’는 삼국유사의 권 2권에 있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가면무극이다. 설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라의 49대 헌강왕이 용왕의 한 아들을 처용이라 하고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하고는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역신이 처용의 아내를 흠모하여 정을 통하다가 그 불륜이 처용에게 발각되었다. 그러나 어질고 착한 처용은 그 후에 처용가를 지어 부르며 춤을 추면서 방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때에 역신이 처용에게 감격하여 그 앞에 꿇어앉아 말하였다.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과오를 범하였으나 공이 노하지 아니하니 감격하여 차후에 공의 형용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노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신라의 사람들은 처용의 화상을 호부라고 생각했으며 조선말까지도 이 가면무는 악귀를 몰아내기 위하여 궁중에서 행해지는 정재가 되었다고 한다. 처용무는 일명 오방처용무라고도 한다. 이는 오방을 상징하는 동의 청, 남의 홍, 중앙의 황, 서의 백, 북의 흑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5인의 군무로 변하였다. 처용무의 내용과 그 춤의 구성을 살펴보자. 처용 5인은 두 팔을 허리에 붙이고 청, 홍, 황, 흑, 백의 순서대로 대기를 하고 선다. 그러면 음악은 수제천을 연주한다. 차례로 들어와서 좌를 돌아 북향 하여 서고 음악이 그치면 처용가를 부른다. 다시 음악이 시작하여 향당 교주 하면 처용 5인이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소매를 들었다가 다시 허리 위에 놓고 허리를 구부려서 마주 본다. 다음, 내족(안쪽 발)을 들어서 다시 북향 하여 섰다가 허리를 젖혀서 서로를 본다. 이를 ‘무릎디피춤’이라고 한다. 또 청, 홍, 흑, 백은 모두 내족의 반대 발인 외족을 먼저 들고 황은 왼발을 먼저 들어서 상면 2도, 상배 2도로 춤을 춘다. 청, 홍과 흑, 백은 모두 소매를 들어 안으로 끼고 황은 손 춤을 추면서 우측으로 낀다. 그다음은 반대로 청, 홍, 흑, 백이 밖으로 끼고 황은 좌측으로 낀다. 이것을 ‘도돔춤’이라고 하는 데 소매를 들어서 안으로 끼는 동작을 말한다. 청, 홍, 흑, 백은 내족으로 선진 하고 황은 오른발로 선진 하는 ‘발바딧춤’으로 전정 중앙에서 모두 북향하고 선다. 여기서 ‘발바딧춤’이라는 것은 발을 올려 걸으며 무릎으로 굽히는 동작을 말한다. 황은 동을 향하여 춤을 추고 청, 홍, 흑, 백은 서를 향하여 춤을 춘 다음 반대로 황은 서향 하고 청, 홍, 흑, 백은 동향하며 춤을 춘다. 홍은 오른발을 들어 뒤로 물러나며 남에 서거나 왼발을 들어 앞으로 나아가 북에 선다. 즉, 황은 중앙에 서고, 청은 동쪽에 선다. 백은 서쪽에서 발을 들어 옮기며 다른 열을 만드는 ‘발바딧대무’를 한다. 황은 북을 향하여 춤추고 청, 홍, 흑, 백은 중앙을 향하여 처음 흑과 황이 대무하고, 다음 차례로 청, 홍, 백과 대무한 다음 중앙을 등지고 제자리를 향하여 춤을 춘다. 회선, 우선으로 흑이 먼저 나오고 황은 백과 홍의 사이에 들어가 거의 모두가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 흑은 뒤로 물러서고 홍은 앞으로 나가 선다. 이렇게 처용의 5인이 일열 횡대로 서면 일제히 무퇴하여 북향으로 선 다음 노래를 한다. 음악이 나오면 낙화유수 동작을 하면서 춤을 춘 다음 차례로 회선 하여 나간다. 이렇게 하면 모든 춤이 끝난다. 처음에 처용무는 적색 가면을 쓴 1 인무였으나 조선에서는 5방 처용무로 확대되었다. 악학궤범에서는 학연화대 처용무 합설이라는 형태로 선을 보이기도 하는 데 이는 학무와 연화대무, 처용무를 종합한 형태로 춤을 선보인 것으로 종합예술무용으로써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