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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속무용 강강술래에 대한 소고

by 소리향 20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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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가위가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민속놀이가 있다. 보름달이 동그랗게 뜬 달 밝은 하늘 아래에서 예로부터 행해지던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이자 민속춤인 강강술래이다. 이 강강술래는 주로 호남지방에서 연희되었던 여자들만의 놀이였는데 그 기원과 유래로는 많은 설이 있다. 강강술래는 기본적으로 원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원무의 형태는 원시시대부터 유행하던 형태이므로 생각해보면 그 기원을 토속적인 행사에서 주로 원무의 형태를 취하며 춤을 추고 행사를 진행하던 아주 오래전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점차 형태를 갖추고 반복적으로 행해지면서 행사처럼 자리 잡은 것이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 형식이 남게 되어 문헌에 기록됨으로 인하여 그 정착시기를 조선시대로 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강강술래에 대한 여러 가지 기원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기원설로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남해에서 왜적을 맞이하여 싸울 때에 적을 경계하기 위한 술책으로 부녀자들의 군무를 이용하였던 것이 전승되어 왔다는 유희 설을 들 수 있다. 이때 왜군이 상륙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아녀자들이 늦은 밤에 횃불을 밝히고 무리를 지어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강강술래의 ‘강’은 둘레, 주위라는 뜻을 지닌 호남지방의 사투리이며 ‘술래’라는 것은 경계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을 합하면 ‘주위를 경계하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이 유래가 어느 정도 타당하게 보인다. 강강술래는 목청이 좋은 여인이 먼저 선창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후에 여럿이 제창을 하면서 남도 소리의 특징인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강강술래를 느리게 부를 때는 ‘강강수월래’라고 하기도 하여 그 명칭을 강강수월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춤은 원으로 동그랗게 둘러 선 여인들이 달을 보면서 원을 빙빙 돌면서 이루어진다. 원무를 하는 중간중간에는 여러 가지 놀이가 포함되었다가 다시 다른 놀이로 이어지면서 신나는 놀이가 곁들여지니 당시에 자유롭게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던 아녀자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놀이이며 경험이었는지가 추측이 된다. 강강술래의 노래를 살펴보면 그 가사에 특별한 것이 없고 아무 말이나 선창자가 먼저 메기면 무리가 함께 받아주는 형식이었다. 현재는 그 사설이 어느 정도 정형화가 되어 그 가사를 무형문화로 전승하고 있다.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민속무용으로 틀이 잡히면서 그 우수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되어 무대 무용으로도 선보이며 발전되어 왔다. 강강술래의 구성을 살펴보면, 수 십 명이 무리를 지어 원을 만든다. 춤이 시작할 때는 아주 느린 중중모리로 시작되며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동안 천천히 노래를 하면 원을 돌 때도 느리게 돈다. 원을 만들어 도는 것도 한 방향만을 향하지는 않고 오른쪽으로 돌다가 왼쪽으로 돌기도 하고 달팽이 모양으로 원을 말기도 하고 바깥으로 돌기도 한다. 하나의 원이 아니라 이중으로 또는 삼중으로 원을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자유롭게 작은 원을 만들기도 한다. 천천히 걷다가 뛰기도 하며 맨 마지막에는 천천히 끝을 낸다.

  강강술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춤에는 당시의 여러 가지 생활문화를 담은 놀이가 포함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놀이에는 남생이놀이, 고사리 꺾기, 청어 엮기, 기왓장 밟기, 문지기 놀이, 꼬리 따기, 덕석말이, 손치기 등이다. 남생이 놀이는 ‘남생아 놀아라, 똘래 똘래가 잘 논다.’라는 가사로 노래를 부르며 한 사람이 가운데에 들어가서 장기자랑을 하는 형태이다. 그러면 원에 둘러서 있는 무리들이 함께 즐기며 흥겹게 흥을 맞추어 준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즐기게 된다. ‘고사리 꺾기’는 평소에 고사리를 꺾는 것 같은 형태를 군무를 통하여 흉내 내는 모양으로 하는 놀이이다. 이런 놀이를 어떻게 만들어 내었는지 참으로 놀랍고도 재미있다. ‘청어 엮기’ 놀이 또한 청어를 엮어서 말리는 과정을 무리의 놀이로 풀어낸 것인데 이 또한 기묘하다. 기왓장 밟기는 무리가 엎드리고 한 사람이 등을 밟고 지나가는 모양으로 놀이를 진행하는 것이다 ‘문지기 놀이’는 두 사람이 문을 만들어 그 문 안으로 들어가며 잡기 놀이도 한다. ‘꼬리 따기’ 또한 놀이의 형태로 맨 끝에 있는 사람을 잡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덕석말이’는 곡식을 말리기 위해 덕석을 풀고 마는 과정을 놀이로 풀어낸다. 이런 놀이를 통해 농경 사회에서 힘들고 고되게 해 온 일을 놀이로 흥겹게 풀어내고 승화하고 있는 곳이 나타난다. 강강술래 놀이를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당시에 있던 고단함을 어느 정도 날려줄 수 있는 날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손치기’ 놀이는 ‘발치기’ 놀이와 함께 손과 발을 치면서 노는 놀이이다. 이를 통해서는 신체적 운동까지 겸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처럼 강강술래는 무수히 많은 놀이를 탄생시켰으며 어떠한 격식도 없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문화예술로 만들어냈다. 강강술래는 느리게 시작하여 중강강술래를 통해 자진강강술래로 점점 빨라지는 형태로 진행된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추며 동네 모든 사람이 모여 희로애락을 같이 하던 그 옛날의 공동체성과 함께 아름다움도 보여주고 있으니 그 의의에 대하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강강술래는 민속무용으로서도 그 의미가 깊지만 소리 춤으로서도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봤던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민속 무용은 일반 대중들로부터 기원하고 발전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격식화 되고 형태가 정형화되어있는 궁중무용과는 다른 민속무용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민족이 얼마나 흥이 많으며 자유로움 속에서도 정돈되어있으며 창의적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민속무용은 대부분이 우리 고유의 절기를 통하여 많이 연희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민족의 가무에 대한 사랑과 멋스러움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급기어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이르러 인정받고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동스럽고 기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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