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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보태평, 정대업, 선유락, 광수무, 봉래의, 향발무, 학무 조선시대의 무용에 대하여 살펴보는 중에 대부분의 무용들이 오늘날에 복원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조선 시대의 무용을 면밀히 살펴본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 무용의 역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한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면 이번 장에서는 보태평, 정대업, 선유락, 광수무, 봉래의와 향발무, 학무를 좀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가 악학궤범과 정재 무도 홀기에 기록되어 있는 바, 이 자료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한계임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오늘날에 복원된 춤들도 있지만 이보다는 기록에 의한 것으로 알아보기로 하겠다. 먼저 ‘보태평’에 대하여 알아보자. 보태평은 세종 29년에 세종대왕이 ‘정대업’과 함께 친히 창작한 것.. 2021. 2. 28.
조선시대의 무용 몽금척, 수보록, 근청정, 수명명 조선 시대에는 많은 궁중 무용들이 창작되고 정리되었다.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춤들이 많이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 창작된 춤들은 악학궤범을 통하여 정리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전해 오는 춤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자료가 되고 도움이 되므로 조선의 춤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조선 초기에 전해진 무용과 후기에 정리된 무용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악학궤범과 정재 무도홀기 등에 기록되고 무보로 남아 있는 것들을 여기서 살펴보고 가능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초기에 추어진 춤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초기의 춤 중 가장 먼저 ‘몽금척’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몽금척은 다른 말로 ‘금척’이라고도 한다. 세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몽금척은 ‘태조 2년에 정.. 2021. 2. 26.
조선시대 무용의 배경 및 궁중무용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그동안 화려하게 자리 잡았던 불교문화들이 차츰 쇠퇴하게 되었다. 모든 사상이나 문화 등은 유교의 기본 원리에 의해서 전개되었으므로 이로 인해 문화와 예술, 풍속 등도 유교에 기초한 사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조선의 정치는 항상 예와 악에 기초를 두었으며 조선 초기부터 제도를 정비함에 힘썼기에 중앙에서는 음악을 관장하는 아악서와 전악서를 두게 되었으며 악정을 바로잡기에도 매우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예악의 부흥은 단시일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4대 세종의 시대부터 힘쓰게 되었으며 제7대의 세조 때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완수될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더불어 금속활자의 주조, 그리고 측우기의 발명, 서적의 .. 2021. 2. 25.
고려시대의 민간무용과 무고, 무애, 동동 고려시대의 민간 무용과 무고, 무애, 동동에 대하여 고려시대에는 궁중정재에 있어서 훌륭한 예술 문화를 창출했을 뿐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도 흥겨운 무용을 일으켜서 민간 무용으로도 일반인들의 전통이 남아있다. 민간 무용의 발달도 가무백희의 산실이 되었던 행사 팔관회로 인하여 자리 잡게 되었다. 민간 무용의 연희 내용은 북방의 글안, 여진, 몽고 등에서 행해지던 호악과 호희까지 함께 적용이 되어서 그 내용이 다양하였으며 음력 섣달 그믐밤에 민가와 궁중에서 마귀와 산신을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이었던 나례, 그리고 서민들의 농사에서 즐기던 농악, 가면무와 같은 산대잡극이 커다란 몫을 하였고 나비춤, 법고춤, 목어와 같은 불교의 의식이자 춤이었던 작법과 함께 전국의 사찰에서 불교 의식의 하나로 성대하고도 호화스럽.. 2021. 2. 25.
고려시대의 무용 궁중정재 수연장, 포구락 등 고려시대의 무용 궁중정재 수연장, 포구락 등에 대하여 고려시대의 문화는 불교가 주도하였다. 불교는 고려의 국교로써 왕실의 지지와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최고로 성행 하였다. 고려 사회와 문화예술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이렇게 불교적인 사상은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도 그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도참사상과의 결합으로 인해 이때 전해진 불교는 본래와 달리 미신적인 요소를 많이 갖게 되었다. 고려는 팔관회와 연등회처럼 신라의 유풍이 남아 있었다. 11월에는 팔관회를 행하였고 연등회는 음력 정월 15일에 불교 행사로 거행되었다. 이때에는 그 당시의 예술과 문화가 집대성되어서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어 거행되었으며 표현되었는데 이것을 ‘가무백희’라고 하였다. 고려 시대의 가무백희는 .. 2021. 2. 25.
신라의 무용 선유락과 그 밖의 무용 신라시대는 문화예술이 융성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춘 무용예술이 기록되어 있거나 남아 있다. 신라의 춤 중에서 기록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가야지무’라는 춤이 있었는데 이 춤은 문무왕 8년에 지금의 충주인 국원에서 대아창용창이 잔치를 베풀어 왕을 대접하고 음악을 연주한 데서 유래하고 있다. 이 잔치에서 견주의 아들이었던 15세의 능안이 와 앞에서 ‘가야지무’를 추었다. 이것을 본 왕이 춤을 추는 능안을 보며 그의 단아한 여 용모가 단아함에 감탄하였고 왕이 하사하는 금잔으로 술을 권하고 후하게 폐백을 내려 칭찬했다고 한다. 더 이상 이 춤에 대한 내용과 의상에 관한 기록은 없으며 다만 씩씩한 남성적인 기상이 담겼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진평왕 시대에는 ‘혜성가무’라는..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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